항목 ID | GC02211077 |
---|---|
한자 | 雙川處士朴準奎-孝行談 |
이칭/별칭 | 여양리 창효각(彰孝閣)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옥방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경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 「여양리 창효각」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수록 |
---|---|
관련 지명 | 창효각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옥방동 |
성격 | 효행담 |
주요 등장 인물 | 박준규 |
모티프 유형 | 소학의 가르침의 법도를 실천한 지극한 효심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옥방동 개울가에 세워져 있는 창효각(彰孝閣)에 얽힌 박준규의 효행담.
[채록/수집 상황]
쌍천처사 박준규의 효행담은 1998년 마산 문화원에서 간행한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여양리 창효각(彰孝閣)」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진전면 여양리 옥방동 개울가에 창효각(彰孝閣)이 세워져 있다. 이 비각은 증동몽교관(贈東蒙敎官) 의진(毅鎭)의 셋째 아들 준규(準奎)가 효를 행함이 남보다 특이하여 많은 유생들과 유인향약본소(儒人鄕約本所)의 공론에 따라 선조의 효적을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귀감으로 삼기 위하여 1940년에 효행 기적비를 세우고 창의각을 건립한 것이다.
‘쌍천처사(雙川處士) 밀성박공준규의 효행기실비’의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남의 파릉에 옛 효자이신 쌍천박공인 이름은 준규요 자가 자여라는 분이 있으니 태어나서 겨우 6세에 소학 책을 아버지이신 만포공에게 배우며 문득 기쁜 듯이 말하기를 “이와 같이 행하지 않으면 성인이 될 수 없다.”하고는 스스로 외우고 익힘을 부지런히 하여 거의 침식을 잊을 정도였으며,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는 한결같이 소학으로서 준칙을 삼았다. 항상 부드러운 음성과 유쾌한 낯빛으로 몸을 편히 하여 드리고 뜻을 순하게 따르시어 소학의 절차와 같이 하지 아니함이 없더니 어버이께서도 기뻐하고 사람들도 간섭하는 말이 없었다.
지난 1815년 을해(乙亥)에 아버님과 어머님이 함께 돌아가시게 되자 상례를 모두 마치고는 문득 낯을 가리고 울면서 말하기를 “부모님이 지극한 효행이 있었는데도 묻어 버리고 밝게 나타내지 아니한다면 이는 불초의 죄이다.” 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쌍천처사 박준규의 효행담」은 조선 시대 8세 안팎의 아동들에게 유학 교육의 입문서이자 수신서(修身書)인 소학(小學)의 가르침과 법도에 따라 효로서 부모님을 모시고 섬긴다는 ‘효행’이 주요 모티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