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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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熊川-將帥木 |
이칭/별칭 | 웅천 장수목 전설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우선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 해안가에 있는 장수목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웅천 해안가에 ‘장수목’이라 부르는 소나무 몇 그루가 조그만 솔숲을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는 임진왜란 때 이 지역을 침탈한 왜군과 조선 수군에 얽힌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온다.
[채록/수집 상황]
「웅천의 장수목」은 2008년 진해시에서 발행한 『진해 스토리』에 수록되어 있다. 원작은 「웅천 장수목 전설」이며, 저자는 윤수영이다.
[내용]
웅천은 예로부터 지정학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그들을 막기 위해 읍성을 쌓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왜구의 침탈을 막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임진왜란은 사정이 예전과 사뭇 달랐다. 사태가 급한지라 웅천 읍내 사람들은 산속이나 타지로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왜구를 막기 위해 웅천 해안가에도 20~30명의 조선 수군 경비대가 꾸려졌다. 그러던 어느 날 대여섯 척의 큰 배에 왜놈들이 나눠 타고 웅천 해안가에 상륙하였다. 조선 수군 경비대는 왜놈들에게 맞서 치열하게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멀리 숨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 수군은 끝까지 저항했지만 조총으로 무장한 왜놈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전멸하고 말았다. 무자비한 왜놈들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에야 돌아갔다. 왜놈들이 떠난 후 마을 사람들이 산에서 내려와 해안가에 수군들을 고이 묻어 주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창들을 꽂아 무덤 표시를 해 두었다. 마을 사람들은 왜구들이 언제 또다시 쳐들어올지 몰라 각자의 살림을 짊어지고 인근 마을과 산으로 피난을 갔다.
몇 년 후 해안가에 출몰하던 왜적들도 그들의 근거지에 국한되어 있어 웅천 마을 사람들도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고향을 지키고자 일어섰다. 그리하여 30여 명의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의병이 조직되어 웅천 해안가에 도착하고는 하나같이 깜짝 놀랐다. 몇 년 전 수군들의 무덤에 꽂아 두었던 창들이 모두 울창한 나무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 아니나 다를까 왜놈들이 조총과 활을 쏘면서 마을에 나타났다. 역부족이었던 의병과 백성들은 무기를 버리고 산속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그런데 총탄과 화살이 비 오듯 하는데도 단 한 명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다. 이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총알과 화살은 의병들이 있는 곳까지 당도하지도 못하고 죄다 수군들을 묻은 그 소나무들에 가서 꽂히는 것이 아닌가! 왜군들도 아무리 의병과 백성들을 향해 총과 활을 쏘았지만 모두 소나무 숲에 막혀버리자 마침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조선 수군들의 넋이 왜적들을 물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왜적들이 떠나자 마을 의병들은 산에서 내려와 소나무에 벌집처럼 꽂혀있던 화살을 빼내고 총탄을 제거해 주었다. 또한 정성스럽게 제사상을 차려 소나무에 제를 올렸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켜준 이 소나무를 ‘장수목’이라 부르고 해마다 음력 8월이면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웅천의 장수목」은 죽어서도 소나무가 되어 왜구를 물리친 조선 수군의 ‘영웅담’이다. 또 왜군에게 희생당한 조선 수군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침탈로부터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장수목’은 단순한 나무의 의미를 떠나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서 제의의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