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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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興寺創建說話 |
이칭/별칭 | 성흥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화선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1년 - 「성흥사 창건 설화」 『진해의 민속』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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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성흥사 - 경남 창원시 진해구 대장동 |
성격 |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신라 흥덕왕|무염 국사|왜구|유춘우 |
모티프 유형 | 사찰 연기담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전승되는 전설.
[채록/수집 상황]
『진해의 민속』[진해 웅천 향토 문화 연구회, 2001]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창원시 진해구 웅동1동 굴암산 기슭에 있는 성흥사의 중수기에는 다음과 같이 그 창건 유래를 말하고 있다.
신라 흥덕왕 41년에 왜구 10만여 명이 부산과 제포에 침범하여 조야가 어지러워져 왕이 크게 우려하고 중신들을 모아 대책을 물었으나 아무도 현명한 방책을 말하는 신하가 없었다. 왕은 근심을 하며 자리에 드니 꿈속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말하되 “왕의 나라 지리산 중에 무염(無染)이라는 화상(和尙)이 있으나 금산보개여래(金山寶蓋如來)의 후신이라 불가사의한 신력(神力)이 있어서 늘 천신(天神)을 거느리고 다니므로 가히 나라를 복되게 하고 세상을 구제할 인물이니라. 또 서남쪽에 산이 있어 일러 불모(佛母)라 하고 산명수려(山明水麗)하고 상서로운 구름이 항상 떠서 참을 닦는 사람이 찾을 만한 곳이 되느니라”
이에 왕은 느낀 바가 있어 사람을 보내 화상을 모셔 와 분부를 하니 화상은 팔판산(八判山) 철마봉(鐵馬峯)으로 올라가서 금석장(金錫仗)을 재(嶺(령))에 꽂고 왼손으로 배를 두드리니 그 소리가 마치 포성처럼 진동하고 문득 금갑신장(金甲神將)이 산을 둘러싸고 나타나는지라 왜구는 이것을 보고 놀라 물러가고 말았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무염화상을 국사(國師)로 봉하고 평장사(平章事) 유춘우(柳春雨)에 절을 지어 ‘성흥사(聖興寺)’라 하고 사전(寺田) 360결(結)과 사노(寺奴) 백호(百戶)를 하사하였다. 지금 이 절은 대장동 뒷산에 옮겨져 있다.
[모티프 분석]
「성흥사 창건 설화」의 주요 모티프는 중수기를 토대로 구성되어 있는 ‘사찰 연기담’이다. 왜구 10만여 명이 부산과 제포에 출몰하여 신하들은 방책이 없어 왕이 진노하는데 무염 국사가 왜구를 물리치자 국왕이 사찰과 땅과 노비를 주어 성흥사를 창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