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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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民-傳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정헌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8년 - 「안민 고개 전설」 『진해 스토리』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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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안민 고개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태백동과 성산구 안민동을 이어 줌 |
성격 |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황장군 |
모티프 유형 | 지명 유래담|회치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전승되는 전설.
[채록/수집 상황]
『진해 스토리』[진해시, 2008]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안민 고개는 진해에서 안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 고개는 임진왜란 때 황(黃)장군이라는 명장이 있었는데 왜군이 이 고개를 넘지 못하게 방어를 잘 해서 그쪽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안민 고개 서쪽 산등에는 회치산(會峙山)이라 불리는 곳이 있으니, 여기는 살림을 사는 아낙네들의 단순한 놀이터가 아닌 뜻을 지닌 산이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시달리던 마을의 부녀자들이 1년에 한두 번 산마루나 버덩에 모여 놀이를 하던 곳이었다. 회치산에 모여 놀던 부녀자들은 이날 하루만은 시집과 살림살이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봉건적인 인습에서 사는 시집살이는 벙어리 3년, 귀먹어 3년, 눈멀어 3년을 하면서 친정을 갈 수도 없이 매여 살아야만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창원 지방과 웅천 지방은 산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거리라 시집을 가는 경우도 많았고, 시집을 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한 번 시집을 가면 가까운 거리라도 친정을 갈 수도 없고, 친정 가족을 만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양쪽에서 올라올 수 있는 산마루에 자리를 정하여 같은 날에 회치를 하자고 약속을 하여 출가한 딸들이 그곳에서 친정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만남의 고개가 된 것이다. 주로 추석이 지난 음력 17일에 창원이나 웅천에서 출가한 딸들이 이곳에 올라와서 1년에 한 번이라도 친정 가족을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누었다.
[모티프 분석]
「안민 고개 전설」은 두 개의 독립된 모티프로 짜여 있다. 첫 번째 모티프는 안민 고개라는 ‘지명 유래담’이다. 임진왜란 때 황장군이라는 명장이 이 고개를 잘 지켜 백성들이 살기가 편안해져 안민(安民)고개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모티프는 안민 고개가 조선 시대 추석 명절 이틀 후 부녀자들의 회치하는 고개로 이용되었음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