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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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정헌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7년 - 「자복개」 『마산의 문화유산』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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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자복개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
성격 |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없음 |
모티프 유형 | 지명 유래담|역사적 사실담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전설.
[채록/수집 상황]
『마산의 문화유산』[마산시, 1997]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예로부터 자복개라는 곳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의 한국 철강과 육군 통합 병원이 있던 자리였다. 이곳은 조선조 말기에는 우리의 외교적 국력이 쇠퇴하고 또한 파쟁 등으로 말미암아 강대국인 러시아의 조차지(租借地)가 되었는데 그들은 오래 있을 계략으로 영사관[옛 창원군청 자리]까지 짓고 살았다.
얼마 뒤에 러일 전쟁으로 러시아가 전쟁에 패함에 따라 일본이 이를 빼앗아 다시 조차지로 사용하게 되었고 그 곳에 일본군이 포병 부대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예전부터 생활 터전을 잡고 살아왔던 진양 강씨들이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우산 마을]으로 강제로 이주하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일본군에 의해 이곳으로 이주하게 되었으니 복되게 잘 살라는 뜻으로 누가 마을 이름을 지었는데 다복(多福)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자복개」 이야기에는 역사적 ‘사실담’과 ‘지명 유래담’의 두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복개’라는 지명 유래에 대한 설명은 이야기 속에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이곳이 조선 말기 열강들에 의한 침탈이 있었던 아픈 역사적 장소였음을 상기시키고 있으며, 예로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강제 이주를 담고 있다. 현동 우산리를 다복 마을로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 유래담도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