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A02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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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귀산동 석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정헌 |
석교마을 590번지에 살고 있는 이봉규 옹은 부인과 함께 바닷가 한편에 비닐로 지어진 9.92㎡ 남짓한 홍합막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 마을 앞바다에서 짓고 있는 홍합농사 때문이다.
부부는 이 홍합막과 홍합밭, 곧 홍합양식장을 분주히 오가면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 여느 농촌의 노부부와 마찬가지로 자식들은 도회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노구를 이끌고 힘든 홍합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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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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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양식장
이봉규 옹은 창원군 구산면 옥계리에서 태어나 결혼을 하고 난 뒤 이곳 석교마을로 들어와 홍합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2남매를 힘들게 키웠다. 이 마을에서 홍합양식을 시작한 것은 40여 년 전인 1970년대부터로 알려져 있다.
처음부터 마을 사람들이 홍합양식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반동에서 살고 있었던 고(故) 최갑렬이란 분과 그 외 몇 명이 양식업을 했는데, 이 사람들이 홍합밭을 떠난 뒤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구입해 비로소 마을 바다 홍합밭이 마을 사람들의 소유지가 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처음에는 16가구가 홍합밭을 사서 농사를 시작했는데, 이 후 농사가 힘들어 못하는 사람들은 다시 처분하기도 하고, 몇 명은 마을을 떠나기도 하였다. 현재는 27가구 정도가 홍합양식을 생계로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양식장은 1줄 단위로 주인이 있는데, 마을 어민 다수가 어장을 소유하고 있다.
이봉규 옹은 처음 홍합밭을 구입할 때, 1줄 89.26㎡ 정도의 밭을 600만 원 정도 주고 구입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봉규 옹이 들려주는 홍합양식일은 그야말로 ‘고생 구더기’였다. 홍합 채취는 11월 말부터 이듬해 4월까지 약 6개월간이다. 그렇지만 채취를 위해서는 1년을 꼬박 온 식구가 이 일에 매달려야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뭍의 논농사에 비견되는 일이다.
밭에 씨를 뿌리고 2,3개월이 지나면 아주 작은 알갱이가 보일 정도로 자라는데, 6월에서 7월 사이에 이것을 떼어다 다시 옮겨 심어야 한다. 씨를 붙이는 것을 ‘수화연’이라고 부르는데, 길이는 약 6~7m 되고, 단단한 고무를 한 뼘 정도로 엮어 둔 것이다. 그 사이사이에 씨를 다시 심는데, 석교마을에서는 이것을 ‘채무 단다’라고 한다. 논농사로 치자면 이앙에 비교될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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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양식 밭과 마창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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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연을 들고 있는 이 옹
채무를 달고 1시간 가량이면 홍합발이 내리기 시작하는데,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히 붙는다. 이 때 심은 홍합은 1년이면 다 자라 해를 넘기면 발이 약해져 저절로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홍합 수확기가 되면 이를 유심히 관찰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판매는 마산 어시장 잠수기조합에서 경매로 일괄 판매되기 때문에 판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예전에는 홍합을 채취하여 가공까지 했지만 요즘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양식업에 종사하는 분들도 이제는 늙어 예전같이 힘을 쓸 수도 없고 일손도 부족하여 가공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24㎏ 정도 되는 들통에 담아 가는 정도로만 그치는 것이다.
경매는 새벽 5시 30분경에 주로 이루어지는데, 시세에 따라 가격 변동이 심한 편이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의 힘만으로 부족해 수화연에 씨를 매달 때나 수확기에는 삯꾼을 사는 수밖에 없는데, 여자의 경우 4만 원, 장정의 경우는 10만 원을 품삯으로 계산한다. 수확은 채취선에서 기계가 홍합을 끌어(달아)올리면 그것을 뜯어 홍합막에서 1차 가공만하여 판매 상자에 담는다. 한 번 끌어올리는 무게가 50~60㎏ 정도여서 중노동 중의 중노동이라고 한다. 그래도 요즘은 이 힘든 일을 기계가 대신해 주어 그나마 큰 다행이라고.
이봉규 옹은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통발과 (유)자망 등을 갖추고 있는데, 이를 이용해 장어며 게, 가재, 볼락, 잡어 등을 잡아 마을 여러 횟집에 판매하여 부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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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바다에서 자망으로 고기를 잡는 이 옹
이봉규 옹의 홍합막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이철이(69세) 씨의 홍합막에서 자망을 손질하고 있는 이철이 씨와 부인인 정호임(65세)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노부부는 석교리 585-3번지에 주소를 두고 있다. 정호임 씨는 창원군 구산면 명주에서 태어나 스무 살에 시집을 와 홍합양식을 30년 넘게 하고 있다. 남편인 이철이 씨는 어릴 적 충무에서 이주하였다고. 이철이 씨 부부는 슬하에 3남매를 두었는데, 아들들을 모두 대학 공부를 시킨 억척 부부로 마을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홍합이며 자잘한 조개 캐기며 고기잡이며,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남은 것은 병뿐이라고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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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망을 손질하는 이철이 씨 부부
소유하고 있는 홍합밭은 3줄이나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두 줄은 마을 사람에게 세를 주고 현재는 1줄만 하고 있다. 더 이상 힘든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세 차례나 큰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무거운 것을 많이 들다 보니 허리에 골병이 든데다 여기에 고관절까지 겹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홍합양식은 하루도 편히 쉴 날이 없을 정도로 많은 품을 필요로 하는 농사지만 그래도 예전부터 하던 일이라 그만둘 수가 없다고 한다. 현재도 아픈 몸을 이끌고 바다에서 잡은 고기들을 마을 횟집에 판매하는 일도 계속하고 있다.
[정보제공자]
이봉규(남, 1941년생, 석교마을 거주)
정호임(여, 1944년생, 석교마을 거주)
이철이(남, 1940년생, 석교마을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