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B02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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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상현 |
석산마을에는 예부터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는데, 그 가운데 물와(勿窩) 김상욱(金相頊) 선생도 있다. 김상욱 선생의 자는 인숙(仁叔)으로, 석산마을 상산김씨 입향조로서 1892년 병조판서에 추증된 김명윤 선생의 10세손이다.
물와 선생은 1857년(철종 8년)에 출생하여 1936년 향년 80세로 운명하였다.
처사(處士)로 이름을 날렸던 물와 선생은 ‘정승 세 명이 대제학 한 명만 못하고, 대제학 세 명이 처사 한 명만 못하다’는 말을 웅변해 주는 삶을 살았다. 이는 정승보다는 대제학이, 대제학보다는 처사가 지방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인재를 길러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라고.
물와 선생은 어려서 과거에 나갈 뜻을 접고 서산 김흥락 선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당시 서산 선생은 금계(金溪)에서 학문을 강론하였는데, 남쪽 사람들이 앞 다투어 가서 배웠다고 한다. 특히 서산 선생은 물와 선생에게 ‘격언팔절(格言八節)’을 써서 주어 권면하였고, 이에 물와 선생은 이를 학자들 사이에 전수하여 후대의 학자들이 물와 선생을 ‘유림(儒林)의 종장(宗匠: 경학에 밝고 글을 잘 짓는 사람)’이로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물와 선생은 『성리유찬(性理類纂)』, 『순충록(殉忠錄)』, 『예의고증(禮疑考證)』, 『강의(講義)』 등 14책(冊)을 저술하고, 8권 4책의 『물와문집(勿窩文集)』을 남겼다. 『물와문집』은 제1권에 시(詩), 제2~4권에는 서(書), 제5권에 서(書)·잡저(雜著), 제6권에는 잡저(雜著), 제7권에 서(序)·기(記)·발(跋)·잠(箴)·명(銘)·상량문(上梁文)·축문(祝文)·제문(祭文), 제8권에 비(碑)·묘지명(墓誌銘)·묘갈명(墓碣銘)·묘표(墓表)·행장(行狀)·유사(遺事) 등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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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와문집(勿窩文集)』
이와 같은 저술로 물와 선생은 창원 지역은 물론이고 원근 고을에 명문장가로 이름을 떨치다가 80세로 진양 내평에서 운명하였다. 그리하여 이듬해 향리로 운구되어 반장(返葬: 객지에서 돌아간 이를 제가 살던 곳이나 고향으로 장사 지냄)이 치러지자 각지에서 문상객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는데, 어림잡아 3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한 집안에서 상을 당하면 문상객이 100여 명에서 200여 명 남짓한데, 문상객이 3,000명이면 15배 정도의 규모가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한 곳에서 수많은 문상객의 식사와 음료를 제공할 수 없어 상산김씨 종가에서는 부득이 식권을 빨강색, 파랑색, 흰색 등 색깔별로 준비하였다. 그리하여 빨강색 식권을 받은 문상객은 왼쪽에 있는 ‘가’식당으로 가게 하고, 파랑색 식권을 받은 문상객은 가운데 있는 ‘나’식당으로 가게 하고, 흰색 식권을 받은 문상객은 오른쪽에 있는 ‘다’식당으로 가게 하여 3천 명이 넘는 문상객들에게 단 한 명에게도 소홀함이 없도록 정성을 다하였다.
위와 같은 이야기는 현재 석산마을 경로회장을 맡고 있는 김기수 씨가 들려주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문상객이 3천 명이 넘을 정도로 많았다는 것은 물와 선생의 높은 학덕과 문장 등이 창원 지역은 물론이고 원근 고을에 널리 알려져서 영향력과 인지도가 상당히 높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더불어 물와 선생의 후손이 물와 선생의 상례에 참석한 문상객에게 조금의 소홀함이 없도록 준비를 하여 식사와 음식을 대접한 것은 ‘접빈객(接賓客)의 예(禮)’를 다한 것이다.
이렇게 석산마을 사람들이 물와 선생과 3천 명의 문상객 이야기를 7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구전하는 것은, 명문장가이며 창원 고을의 처사였던 물와 선생의 인품과 3천 명의 문상객을 대접할 수 있는 재력을 갖춘 집안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현재 물와 선생의 묘와 묘비는 석산마을 인근 상산김씨 문중 납골공원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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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김씨 문중 묘비
[정보제공자]
김기수(남, 1928년생, 석산마을 거주, 석산마을 경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