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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줄은 이렇게 만든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C030203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봉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수정

오늘날 자여마을 큰줄당기기에서는 외부에서 줄을 구입하여 이용하고 있으나, 과거 마을에서는 큰줄을 짚으로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리고 큰줄을 만드는 일은 농한기의 마을 사람들에게 하나의 소일거리가 되었으며, 마을 사람들의 친목 도모를 추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동 작업이기도 하였다. 주민들은 이 큰줄을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모여 만들었다 하여 ‘새벽줄 드린다’고 하였다.

먼저 큰줄을 만들 때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짚을 걷어서 모았다. 짚을 걷는 데도 며칠이 걸리지만 줄을 만드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여마을에서 이루어지는 줄당기기는 마을별 대항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큰줄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쌍줄을 이용하기 때문에 암줄과 수줄을 따로 만들어야 하며,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 때문에 가닥줄까지 만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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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줄-머리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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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줄-줄 명칭

줄은 겨울철 정월이 다가오기 전 섣달에 마을 사람들 여럿이 마을의 큰 사랑방에 모여서 만든다. 그러나 줄이 제법 굵어지고 그 양이 많아지면 봉산마을 가장자리를 흐르고 있는 하천가로 옮겨 줄을 만드는데, 이곳이 바로 줄당기기가 벌어지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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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줄당기기 판, (구)자여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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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줄당기기 판, (구)자여장터

줄을 처음 만들 때는 물레와 같이 짚을 꼬는 실패(자새)에 짚을 엮어서 잔가지를 만든다. 이 짚을 꼴 때는 줄을 좀 더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 속에 숯을 갈아 넣기도 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잔가지를 세 가닥씩 가지고 다시 드리운다(꼰다). 세 가닥을 드리운 가닥 두 개를 다시 엎쳐 여섯 가닥의 줄을 만든다. 가끔 세 가닥씩 가지고 드리운 것을 세 개 엎쳐 좀 더 굵은 줄을 만들기도 한다. 여섯 가닥 줄을 다시 두 개 합쳐 열두 가닥의 줄을 만드는 형식으로 굵은 원줄(몸통)을 만든다. 원줄은 아무리 가늘어도 여섯 가닥은 되어야 한다. 세 가닥 줄은 너무 힘이 약해 줄을 당기다 보면 끊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자여마을에서는 보통 열두 가닥의 원줄을 이용하였다.

“짚을 여 놓아 놓고, 조그마(작게)하거러 이래 가지고 짚을 여기서 돌리면 속에다가 숯을 넣으면, 물레 자시는 실패 거 있지? 그래 여러 가지로 엎어가지고 누구로 잔거 시가치(세 가지)씩 가지고 드리거덩.…… 엎칠 적(합칠 때)에는 반가지는 안하거든. 반가지하면 시나(세 가닥) 드리거든. 그거는 약해서 안 되고, 그래 주로 땡기기 버거바도(힘들어도) 여섯 가지 많이 한다고. 여섯 가지 위에는 아홉 가지 되고, 아홉 가지 위에는 열두 가지 되고. 그래 한 바퀴 돌라카면 열흘도 더 걸리지.”(황봉광, 남, 90세)

열두 가닥의 줄을 만들면 꽤 굵은 원줄이 된다. 이 굵은 몸통줄인 원줄은 너무 굵어서 줄당기기에서 주민들이 직접 당길 수 없다. 이 때문에 원줄에는 얇은 전줄(잔가닥줄)을 연결하게 된다. 이렇게 연결된 잔가닥줄이 바로 주민들이 직접 손으로 당기는 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암줄과 수줄이 모두 만들어지면 수줄을 암줄에 끼워 넣고 빠지지 않게 고정시켜 줄 목나무를 준비하면 줄이 완성된다.

그때는 살림이 어려워 사람들이 모여 앉아도 술을 한잔 사 먹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줄을 꼬는 데만 열중하였으며, 서로간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으로 새끼줄을 꼬는 노동의 무료함을 달랠 뿐이었다. 이렇게 밤새 줄을 만들고 나면 머리에 먼지가 앉아 하얗게 되곤 하였다.

“짚은 모으는 데 며칠 걸리지. 저 큰줄 댕길라면 긴줄 댕기는 것도 줄이 많은데, 줄 들이는(만드는) 사람들 보면 밤낮 없이 드리거든. 머리에 쎄허리가 허여지도록 새벽 줄을 드리께네, 며칠을 드리지. 거 보면 참, 돈이 있나 술을 묵을 수 있나. 참나, 술을 묵어도 돈도 없고, 그 매달리 가지고서 그 맨들어 내는 거 보면…… 참.”(황봉광, 남, 90세)

줄을 만들어 사용하던 그때에는 줄을 만드는 데 10명에서 20명 이상의 성인 남자들이 참여하였으며, 보름이 넘는 기간이 걸렸다. 그리고 짚이 귀하던 그 시절 상당히 많은 양의 짚이 줄을 만드는 데 이용되었음에도 마을 사람들 모두 개의치 않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줄은 줄당기기 행사가 끝난 다음 마을에서 매년 소를 많이 키우는 집에 판다. 이는 짚이 큰줄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의 손이 여러 번 갔기 때문에 부드러워져서 소의 먹이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소를 기르는 집에서 줄을 구입하고 낸 돈은 마을 기금으로 활용하거나 줄당기기가 끝난 뒤 뒤풀이 경비로 이용되었단다.

[정보제공자]

황봉광(남, 1919년생, 봉산마을 거주)

김문학(남, 1925년생, 봉산마을 거주, 송산노인회 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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