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D010303 |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모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해광 |
한국농촌공사 창원지사의 옛 명칭은 창원농지개량조합이다. 더 오래 전 1970년대 이전에는 창원수리조합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산업개발조합으로 불렸다. 1960~1970년대에는 식량이 절대적으로 모자라 배를 굶주린 사람들이 많았기에 국가 중요 국정지표를 ‘증산, 수출, 건설’이라 했다. 그 시절을 일컬어 이른바 ‘보릿고개 시절’이라고도 했는데, 먹고살기가 힘든 시절인지라 당시에는 수리조합의 권한이 막강했다.
창원수리조합은 광활한 동읍과 대산면 일대 평야에 농사용 물을 농수로를 통해 공급하며 경지정리사업을 담당했던 기관이어서 농촌 농민들에게는 절대적인 권력 기관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여름 한철이면 수리조합 소속의 물감독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시절에는 동읍 본포양수장에서 낙동강 물을 양수하여 들판으로 내려 보내는 농업용수로가 대략 10여m의 폭이었고, 만수위가 되면 2m 정도의 깊이로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철 내내 물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본포에서부터 갈전, 일등, 모산을 거쳐 북부, 유등마을까지 마을 앞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농수로가 물놀이 장소로서는 안성맞춤이어서 여름 내내 아이들이 북적거렸다.
그러나 수영이 미숙하여 심장마비로 익사하는 사고도 심심찮게 발생했고, 물놀이로 인해 농수로 제방이 손상되어 주변 농지로 물이 넘쳐 침수 피해가 더러 있기도 했는데, 이러한 사고를 막고 큰 용수로에서 작은 용수로에 물을 나누어 내려 보내는 일을 맡은 물 감독이 있었다. 물감독은 저마다의 담당 구역을 자전거를 타고 수시로 순찰하며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쫓아내며 농수로마다의 수량을 수문을 여닫으며 조절했다.
당시의 아이들은 스스로 헤엄치는 법을 익혀 가까운 농수로에서 온종일 떼를 지어 물장구치며 놀았다. 모산마을에서는 초등학생만 해도 약 3백여 명이 군데군데 작은 수문이 있는 조지껄[일명 조절껄]을 중심으로 수십 명씩 물놀이를 즐겼다.
그래서 물감독은 물놀이를 못하게 하는 방편으로 농수로 제방 위에 벗어 놓은 아이들의 옷가지와 신발을 모조리 걷어 가면서까지 단속을 했지만 좀처럼 아이들의 물놀이를 막지는 못했다.
자전거 뼈대에 삽을 걸치고 갑자기 나타나는 물감독에게 옷과 신발을 압수당하지 않을 요량으로 아이들도 나름대로 망을 본다든지, 아니면 주변 논두렁에 옷과 신발을 숨겨 놓는다든지 하였다. 그러다 운이 나빠 옷과 신발을 빼앗긴 아이들은 발가벗은 채로 물감독에게 혼줄이 나고, 울며불며 잘못을 빌기도 했지만 이내 물감독의 눈을 피해 물놀이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물을 조절하는 조절껄은 발음상 ‘조지껄’로, 물감독이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조진다는 뜻으로도 불렸다. 그 만큼 그 시절의 물감독은 아이들에게 무서운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낙동강 물이 오염되고 농수로도 길을 넓히느라 콘크리트로 개량되고부터는 물놀이하는 아이들도, 그 무섭던 물감독도 사라졌다. 너덧 살만 되어도 스스로 헤엄을 배워 물놀이했던 아이들이 어느덧 중장년층이 된 오늘날은 이 고장 어디에도 물놀이를 할 만한 장소도, 개구쟁이 아이들도 볼 수가 없다.
[정보제공자]
문학봉(남, 1931년생, 북모산마을 거주, 북모산마을 노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