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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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東伯 |
영어음역 | Yi DongbaeK |
이칭/별칭 | 이종기(李鍾琦)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재우 |
[정의]
경상남도 창원 등지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개설]
이동백의 본명은 이종기(李鍾琦)이며, 아명은 동백(東白)이다. 1867년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에서 태어났다. 은산별신굿 보유자이었던 이어인련(李於仁連)[1894~1986]과 육촌 간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무속과 혈연 관계에 있던 창우(倡優) 집단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활동사항]
이동백은 15세 무렵부터 소리 공부를 시작하였다. 김정근(金正根)과 김세종(金世宗)에게 판소리를 배웠는데, 성량이 풍부하고 풍채가 당당하여 거인적인 명창으로 이름이 높았다. 고종 앞에서 소리를 하여 총애를 받았고,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직계를 받았다. 36세 이후 창원 지역에서 약 10년간 활동하는 동안 명창으로 차츰 알려지게 되었다.
46세 때 서울로 올라가 김창환·송만갑(宋萬甲)과 함께 원각사에서 창극을 공연하였고, 원각사가 해산된 뒤 연흥사·광무대 등에서 송만갑과 함께 창극과 판소리를 공연하였다. 1933년 송만갑·정정렬(丁貞烈) 등과 함께 조선성악연구회를 조직하여 판소리 교육에 힘쓰는 한편, 창극 정립에도 노력하였다. 1939년 부민관에서 은퇴 공연을 했지만,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두 달이나 우리나라 각지와 만주, 연해주 일대에서 순회공연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1920~1930년대 녹음한 「새타령」,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등의 유성기 음반이 있다.
[상훈과 추모]
2003년 문화관광부 ‘3월의 문화인물’로 지정되었다. 같은 해 국악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3월 4~30일 이동백의 삶과 예술 세계를 조망하는 특별전시회를 열었다.